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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한국여행 19) - 경주

by 행복한게이 2024. 11. 9.

2024년 10월 7일 월요일.

오늘은 경주로 이동하는날이다. 아침 7시에 일어나서 7시40분즘에 숙소를 나와서 버스를 타러 버스정거장으로 갔다. 8시10분경에 안동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타고, 8시40분경에 터미널 건너편의 안동기차역에 도착했다. 일단 기차역안에 커피숍에서는 샌드위치가 없어서 

편의점에서 포장된 샌드위치를 샀는데..품질은 파리 바게뜨와 비슷한데 가격은 40%정도의 가격이다. 그래서 먹을만하다. 샌드위치를 산 다음에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커피를 사왔다. 커피를 사왔더니 내남자는 다른 서양인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듯... 그래서 나도 노인분과 인사를 했는데..알고보니 독일에서온 노부부였다. 그분들도 한국에서 영어로 대화를 못해서 상당히 갑갑해 하는듯,.. 남자분은 중동 레바논사람이고, 여성분이 독일여성인데, 독일에서 만나서 같이 사는 부부라고... 독일 슈트가르트 근처에서 사신다고 해서...그곳에도 작은수의 한국인들이 살고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가 9시20분경에 기차역 플랫폼으로 이동하는데 그들도 우리와 같은 플랫폼으로 이동해서 같이 올라갔다. 우리는 다른객차좌석이라 여행을 잘하라고 인사하고 헤어졌다. 

 

9시36분발 경주행 부전선 열차타고 경주역에 도착하니 11시30분경이다. 경주역이 얼마나 크던지...나오자 마자 역안에 관광정보 센타가 있어서 그곳에서 우리가 예약한 한옥집을 가는법을 물었더니, 추천하는 방법은 여기서 고속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타고,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여행가방이 큰게 두개나 되니까 그냥 택시를 타라는....그래서 일단버스를 타러 나갔는데..비가 내리기 시작하네..버스를 타고 경주버스 터미널에 대략 30분정도걸려서 도착.. 버스정거장에서 내려서 우산을 펴고 택시를 찾는데..버스 뒤에 대기중인 빈택시를 발견하고 타도 되냐고 물어보니 된다네...그래서 한옥집 주소를 알려주고 갔는데..너무 가까운거리라 마음이 약간 미안하다..대략 10분정도 거리였다...한옥집에 도착하니 12시경...방을 청소하는 외국인 여자가 보이고, 주인 아저씨인듯한분이 나오시길래.여기 예약을 이틀했다고 했더니.. 우리가 가장 먼저 온 손님이라서 그런지 길게 늘어선 방중에 첫번째 방을 사용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방문고리에 채울 번호를 맞추는 자물쇠를 하나 주셨다. 

 

이 한옥은 일단 마당정원이 넓고 조경이 잘되어 있어서 이쁘다. 방에 들어가니 텔레비전은 없고...이불은 올려놓는곳하나와 작은 냉장고 , 그리고 뒷편에 화장실이 딸린 그게 전부다. 내생각에는 뒷편 화장실을 새로 설치해서 방크기가 작아진듯한.. 그래서 아주 작은방... 그리고 나중에 옆방에 손님이 있을때 보니 방사이에 그냥 칸막이를 해서 방을 많이 만든듯.. 옆방에서 하는 소리가 그대로 다 들린다. 일단 짐을 풀고서는 외출준비를 한후에 점심도 먹고 불국사로 가는게 오늘의 일정이다. 

 

골목길을 10분정도 걸어나와서 버스정거장에 도착, 길건너에는 담장이 늘어서 있는데..나중에 보니 오릉이다. 버스를 타고 루플정에서 내려서 다른버스로 갈아타야한다. 버스 정거장을 지나는데 국밥집이 있다. 그래서 그곳으로 가서 점심을 먹었다. 나는 콩나물 국밥을 시키고, 내남자는 소고기국밥... 그렇게 점심을 먹고는 11번 버스를 기다리는데 이 버스정거장 주변에 능이 엄청많다. 마치 작은동산처럼 서있는 이 능들.... 11번 버스를타고 불국사 버스 정거장에 2시정도에 도착했다. 그런데 석굴암으로 가는 버스가 조금전에 1시 40분즘에 떠났다. 그래서 한시간은 더 기다려야 할판이다. 그래서 그냥 불국사를 보러 먼저 올라가기로 했다.  불국사로 올라가는길이 정리가 되어있어서 예전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내가 고등학교 수학여행으로 경주를 왔었는데..그 당시는 공업계 고등학생들이라 선생님들이 애들이 사고칠까봐 염려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주차장을 올라가니 비가 내리기 시작하네..그래서 우산을 쓰고 불국사로 진입하는데...우리나라의 명승지는 진입로가 상당히 길다는 특징이 있다. 그만큼 속세와의 거리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불국사에 다시와보니...수학여행온듯한 학생들도 단체로 있고...그 규모가 상당히 더 커보인다. 비가 엄청나게 오는 날씨라 사진을 찍기에는 별로 좋지 않은날씨... 그래서 사진을 많이 찍지 못한것도 아쉽다. 불국사의 아름다움은 청운교 백운교 교각형태로 지어올린 다리의 건축이 가장 큰 특징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절간에는 이렇게 커다랗게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암시하는 듯한 다리를 절의 건축입구로 지어진것은 유일한 건축인듯하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직전에 지어진 이 절에는 분명히 삼국을 통일해서 신라의 힘을 확장시키려는 염원이 가장 극적으로 상승해있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곳을 지나서 뒤로 돌아서 불국사로 진입하게 되어있는데..작은 절터를 지나서 가파른 계단을 올라서 본당의 절로 접근할수 있다. 이렇게 산중턱에 절의 본당을 세운것은 절에 우주의 기운들이 모여들게 하고, 세상을 아래로 내려보려는 계산이 깔려있었던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이절은 그당시에 커다란 석탑 두개를 배치한 가람형식으로 본당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삼각형의 연결고리를 걸어둔듯하다. 고대에는 왜 삼각형의 피라미드나 삼각형의 구도로 지어진 잉카건물들과의 거리....등등.. 삼각형의 거리로 관계를 맺어내는 건축물이 상당히 의미를 가지는듯한 모습이다.

 

아무튼 비오는날 연등이 깔린 마당과 학생들로 어우선함 그리고 몰려온 중국관광객들...이 모든것이 복잡스럽게 만드는 불국사다. 비오는날의 아쉬움으로 여유롭게 즐겨보지는 못했다. 비가 쏟아지는데 오랫동안 즐기기도 좋지는 않아서..버스 정거장으로 내려오니 3시 20분경 ..시간이 있어서 커피를 마시러 가다가 경주보리빵을 판다고 해서 무언가 싶어서 하나 사먹으려니 박스로 판다는...그래서 보리빵을 작은걸로 두가지 사서 한박스로 사고, 커피집으로 커피 마시러가서 보리빵과함께 먹고 시간을 보내다가 오후 3시40분발 석굴암행 버스를 타러 갔다. 

석굴암으로만 오가는 버스 12번을 타고 석굴암으로 가는길은 급경사길에 산꼭대기로 구불구불하게 올라가는 버스길이다. 고등학생 수학여행때는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산길을 단체로 걸어서 올라간 경험이 있는데..그렇게 한시간정도 산길을 걸어서 올라가서 석굴암을 일출시간에 볼수있었다. 그당시는 석굴암의 불상의 이마에 일출의 빛들이 반사된다는것을 몰랐었는데.... 그런 건축의 미학이 숨어있는줄도 몰랐었는데.. 이제는 그런경험을 할수도 없는 여건이다. 버스 정거장에서 내려서 계단을 올라가서 대략 600미터 정도를 걸어야 석굴암이 있는곳에 도달하고...석굴암을 찾아 계단을 올라가보면 빛들이 들지 못하도록 석굴암 앞을 벽을 세워서 가려놓은듯한 건물이 가로막고 있다. 그옆에 작은 출입문으로 들어가면 유리창너머로만 볼수있는 석굴암의 불상.... 거대하지만 은은한 미소가 머금어지는 차갑고 단단한 돌부처에게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촉감일듯한...예전에 본 석굴암의 모습보다는 굉장히 깔끔해지고 잘 보존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불상주변에 습기가 많았던 느낌이었는데...이제는 에어컨으로 온도를 조절하는듯한.... 아무튼, 예전에는 공개된 석굴암 불상을 마음껏 볼수 있는 구조였는데..이제는 제한된 접근방식으로 관리되어서 상당히 거리를 두고 지켜보고 사진촬영도 금지되어서 사진한장도 건져올수없는 구조다. 

 

석굴암에 적용된 건축기법은 그리스의 파르테논신전과 유사한 건축기법이지만 신라의 불상을 들여놓아야 하는 상황에 맞게 다르게 구현된듯하다. 벽에 새겨진 조각상에서도 그리스인의 모습이 보이고, 인도의 불상양식을 따른듯하고...신라가 국제적으로 교류가 활발한 나라였음을 볼수있는것같다. 그 옛날에 국제적인 교류를 하던 통로인 실크로드로 형성되기 이전에 국제적으로 교류를 했다는것은 놀라운일이다. 

 

보고 나서도 채울수없는 아쉬움들이 많이 남아서, 아래로 내려와서 기념품가게에서 예전에 찍었던 사진들로 만든 석굴암 엽서를 구매하게 만든다. 이렇게 석굴암을 보러 비를 맞으며 왔는데...빈손으로 내려가는듯한 허한심정이다. 그래서 내려가는 갈에 화장실을 다녀오다가 비오는날 버스정거장 길가에서 은행을 구워서 파는 할머니께 은행을 한봉투사서 버스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오후 5시에 내려가는 버스를 탔는데, 내남자와 나의 교통카드가 모두 잔액부족에 걸렸다. 그래서 현금으로 3400원을 내고 버스안에서 자리를 잡았다. 불국사 버스정거장에 도착해서 먼저 편의점을 찾아가서 버스카드를 충전했다.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은시간..다행히 편의점은 아직 열려있어서 그곳에서 버스카드를 충전했다. 불굴사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능이 많은동내에서 버스를 내렸다. 오늘 저녁은 내남자가 좋아할 스테이크를 한번 먹자고 스테이크 식당을 찾아서 한참을 걸어갔는데....이게 모야 오늘이 쉬느날이라고 뜨네....그리고 그 스테이크집 찾지도 못했다. 그래서 그근처에 스테이크식당으로 가서 내남자는 스테이크를 먹고, 나는 스테이크가 들어간 리조토를 먹었다. 

 

나는 원래 저녁을 먹고난후에 동궁과 월지에 야간풍경을 보러 갈 생각이었는데..내남자가 자기 빨래를 오늘 꼭 해야겠다고 해서...주변에 빨래방을 찾아봤다. 내남자는 자기 빨래를 세탁소같은곳에 맡기면 세탁을 대신해주고 찾아갈수있게 서비스 해주는곳이 있을것이라고 믿는듯하다. 자기가 다른나라에서 그런서비스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하는데..여기는 한국이고, 한국에는 그런 시스템이 없다고 말해주었다. 세탁을 하고 싶으면 직접 빨래방에 가서 세탁물을 세탁하고, 시간에 맞추어서 와서 찾아가는 방식이라고....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서비스를 찾겠다는 의지를 보인다...세탁소에 문의해본결과 의류 한점당 가격을 매기는데..그것도 당일 서비스가 되는것도 아니다. 그러니 말도 않되는 소리다. 그래서 주변에 빨래방을 먼저 찾아보고 들러서 물어보기로 하고....식당을 나와서 빨래방이 있다는곳을 찾아가보았는데..실제 주소에는 그런 빨래방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빨래방을 찾아온곳이 경주 황리단길이다. 그래서 젊은이 들이 좋아하는 취향의 스낵과 거리음식들이 늘어선 지역이다. 아무튼 그래서 그곳에서 일단 먼저 숙소로 가서, 숙소에서 세탁을 할수있는지 물어보자고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내 기억에 내가 이 한옥을 예약할때 세탁을 할수있다는것을 보고 예약을 했던것 같은 생각이 갑자기 떠 올랐다. 

 

숙소로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경주 황리단길에서 3정거장정도다...그런데 정거장이 길어서 걷기에는 먼 느낌이다.숙소에 돌아와서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자물쇠가 잘 않열린다. 그래서 주인 사장님께 문자를 보냈더니 사장님이 직접오셔서 몇번 만지시더니 문을 열수 있게 되었는데..잠글때 제대로 완전히 잠그지 않아서 문제가 생긴것같다고 하신다. 그래서 문을 열고난 다음이라 사장님께 세탁을 할수 있냐고 물었더니...저 쪽 대문입구 옆에 작은 건물이 하나있는데..그곳에 세탁가가 있다고 그곳에서 세탁을 할수 있다고 알려주셨다. 그래서 그곳에서 세탁기에 세탁물을 내것과 내남자것을 다 넣어서 세탁을 시작하고는 방으로 돌아와서 쉬면서 하루 일과를 정리했다. 비오는 날의 밤이라 세탁이 끝난 빨래를 건조기에 널어서 지붕 아래쪽에 두고......그런데 옆방에 어린아이가 계속 아빠와 쫑알대는 소리가 다들린다. 참...이거 난감하겠네...오늘 내남자랑 무슨 이야기를 하든 옆방에서 다 듣겠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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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amu.wiki/w/%EC%84%9D%EA%B5%B4%EC%95%94

  •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의하면 이런 결로 현상을 해결해 주었던 것은 석굴암 밑을 흐르는 냇물이었다고 한다. 때문에 석굴암의 상황을 해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콘크리트를 완전히 없애고 냇물이 흐르던 처음 그대로 놔두는 것이라고 한다.
  • 좀 더 자세히 설명한 프랑스 뻬르삐냥 과학국가박사 이종호의 글에 따르면,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인 이태녕 박사는 석굴암은 본래 지하에서 용출되는 물이 굴의 바닥에 있는 암석 기초층을 관통하여 흐르도록 만들어져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의 보수 공사 때 이 지하수를 다른 곳으로 방출되도록 구조를 변경한 것도 석굴암 훼손에 한몫 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원래 석굴암은 샘물이 용출하며 굴 안의 온도를 조절해서 벽면에 결로 현상이 생김을 막았는데, 근현대에 구조를 바꾸었기 때문에 습기 문제가 생겼다. 일제가 1910년대 처음으로 석굴을 보수하기 이전에 했던 기초조사의 평면도를 보면, 원형 주실의 뒤쪽과 2시 방향의 바로 옆면에 샘이 있었다. 이 샘은 10초에 1리터 정도 물이 솟아나와 일년 내내 쏟아져 나왔다. 결로 현상이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여름, 차가운 샘물이 석굴 밑의 석재 아래로 흐르면 '바닥면의 온도가 낮아진다. 벽면이나 석불의 외면에 비해 바닥 면의 온도가 낮으면 이슬은 바닥 면에서만 생긴다. 이러한 원리를 석굴암을 만든 신라의 석공들이 터득했기 때문에 일년 내내 샘물이 콸콸 쏟아지는 샘물 바로 옆에 석굴을 짓고 그 밑바닥으로 샘물을 흘러보냈던 것이다. 이 교수에 따르면 석굴암에서 습기가 생기는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일제가 석굴암을 석굴 내부가 숨을 쉬지 못하는 밀폐 구조로 복원한 뒤 박정희 시기에 재복원했을 때도 이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형대로라면 완전히 개방된 구조이기 때문에 대기의 온도가 상승하면 바깥의 공기가 들어오면서 내부의 표면온도도 함께 높아지므로 결로가 생기지 않는데, 광창과 창구를 모두 막고 전면을 목조 암자로 만들었기 때문에 상황을 악화시켰다.
  • 물이 흐르는 습한 땅 위에 시설물을 세운 사례로 원성왕릉도 있으며, 여기서도 바닥의 습기에서 관을 보호하기 위해 관을 거는 장치를 만들거나 물을 흘려보내는 인공수로 장치를 만들어놨다. 그뿐 아니라 감은사는 아예 법당 밑에 바닷물이 드나들도록 지었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신라인들은 습한 땅에 뭔가를 만들 때는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지 잘 알았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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