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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독서창고

그림 읽는법

by 행복한게이 2024. 6. 23.

 2024. 4. 9. 14:28

 

나도 그림을 잘 읽고 싶었다. 그런데 미술사에서 중요한 작품들은, 대부분 그림을 생각하는 시각을 전혀다르게 독창적으로 그려낸 철학이 담겨있다. 그런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철학적인 생각의 개념들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 창조적인 예술로 태어나는것같다. 이책을 읽고난후에 파리 르브루박물관에 간다면 참 좋을것같다....

★ “무료로 봐도 되는지 모르겠다. 돈 내고 들어야 할 강의다.”

미술 전공자들도 반해버린 화제의 유튜브 채널

〈예술산책〉이 초대하는 경이로운 ‘명작 읽기’ 공부

★ 파리1대학 수업 현장에서 직접 길어온, 우리가 사랑하는 그림들의 놀라운 비밀

★ “이 책과 함께라면 숱하게 봤던 작품도 새로운 눈으로 다시 볼 수 있게 된다!”

_이소영(tvN [유퀴즈 온 더 블록] 화제의 인물 아트메신저)

미술 전공자들 사이에서 “이 정도로 수준 높게 미술 작품을 분석하는 채널은 없었다”며 입소문을 탔던 화제의 유튜브 채널, 〈예술산책〉 속 이야기들이 책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 『그림 읽는 법』에는 〈예술산책〉 운영자가 직접 유학하며 몸담은 파리1대학 예술 수업에서 실제로 다뤘던 작품을 중심으로, 그 안에 숨겨진 작가의 뒷이야기와 예술계 이슈를 담았다. 최고의 예술 인재들이 공부하는 곳에서는 무엇을 가르치며, 그곳의 학생들이 지금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주제는 무엇일지 호기심이 인다면, 이 책이 들여다보기를 추천한다.

『그림 읽는 법』은 특유의 생생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수업 현장 속으로 거침없이 끌어당기며 우리가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예술의 숨겨진 모습을 상세하게 전달한다. 뭉크는 왜 여자들을 흡혈귀 같은 모습으로 그렸을까? 자코메티는 왜 모두 길쭉하고 앙상한 뼈만 남은 조각을 만들었을까? 공포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은 왜 천문학적 금액에 팔리곤 할까? 저자가 소개하는 문법에 따라 찬찬히 그림을 새로운 눈으로 읽어보면, 작품 속 감춰져 있던 이면이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그사이에 나만의 안목과 예술을 바라보는 철학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예술마저 현대인의 필수 교양이 되어가는 시대, 관심은 있어도 뭐가 뭔지 몰라 막막했다면 이 책을 펼쳐보자. 영상과는 달리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 책만의 특별한 흐름에 동참하는 것 또한 새로운 재미다. 이 책에 실린 14번의 클래스는 〈예술산책〉의 콘텐츠들 중에서도 특히 나만의 그림 읽는 ‘독법’을 구축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을 기준으로 엮었다. 신고전주의, 초현실주의, 난해한 듯하지만 알수록 재미있는 현대미술의 진면목까지 오직 이 한 권으로 통달할 수 있다. 시대와 나라를 넘나드는 90여 점의 다채로운 작품 도판도 눈여겨볼 만하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눈과 귀가 단숨에 즐거워지는 책이다.


파리에서

미술을 공부합니다

30대 중반.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누군가는 늦었다고, 또 다른 누군가는 괜찮다고 말할 나이. 이보다 더 늦어진다면 용기를 낼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 저는 오랜 꿈을 향해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뎌보기로 했습니다. 프랑스로 미술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한 거죠.

당시 저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전공에 맞춰 취업을 한 뒤 점차 꿈에서 멀어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파리에서 전시회와 박물관을 맘껏 누리며 미술을 공부하고, 장차 미술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열망은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결심은 실행으로 이어졌습니다. 30대 중반을 넘긴 나이에 학생비자를 받고 짐을 싸서 프랑스로 향했습니다. 1년간 프랑스어 공부에 매달렸고, 희망 전공은 조형예술로 결정했습니다. 미술사와 예술철학, 비평에 관심이 많았고 실제 작품을 만드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죠. 총 세 개의 대학에 지원했는데, 감사하게도 1지망이었던 파리1대학에 합격했고, 이곳에서 조형예술 전공으로 학사와 석사를 모두 마쳤습니다. 조형예술이라고 하면 대부분 조각 작품을 떠올리는데요. 사실 조형예술은 자연 혹은 인공 재료를 이용해 어떠한 시각적 형태를 만들어내는 모든 창작을 말합니다. 데생, 그림, 사진, 조각, 설치 등 모든 시각예술 형식이 포함됩니다. 현대에는 비디오를 활용한 동영상, 레이저 등을 이용한 빛, 소리나 음악과 결합한 하이브리드 작품 등 창조의 영역이 점점 확대되고 있고요. 아티스트가 직접 감상자 앞에서 몸으로 보여주는 퍼포먼스 역시 조형예술의 한 갈래로 인정받고 있답니다.

늦깎이 유학생으로 공부를 시작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프랑스는 학사 전공이 석사와 조금이라도 다를 경우 석사로 바로 진학할 수 없어요. 따라서 저는 학사 1학년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늦게 시작한 만큼 얼른 공부를 마치고 싶은 조바심도 있었지만, 이 과정이 오히려 한국에서의 고정관념을 지우고 백지상태로 출발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어주지 않았나 합니다.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했던 등교 첫날, 세 개의 수업을 내리 듣고 충격에 휩싸여 집으로 돌아온 기억이 납니다. 수업을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다른 나라에서 온 일부 교수님들은 저마다 특유의 억양으로 말했고, 대강당에서 열리는 수업은 소음으로 윙윙댔습니다. 예술철학, 미술사, 기호학 등의 수업은 한국어로 들어도 어려울 내용들인데, 프랑스어로 단번에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죠. 그러나 저를 가장 당황하게 한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거침없는 수업 분위기였습니다. 학생들은 교수님이 말씀을 하고 있는 중에도 망설임 없이 손을 들어 질문을 하고, 너나없이 서로 끼어들어 자신의 생각을 밝히며 의견과 반론을 주고받았어요. 수업 내용조차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던 저로선 그 광경이 정말 놀라웠고 한편으로는 위축되기도 했습니다. 과제를 잘못 이해하고 혼자서 다르게 해 간 적도 있었지요. 그 후 모든 수업 내용을 녹음했고, 열심히 필기하는 학생들을 물색해 수업이 끝나면 곧장 달려가 노트를 빌려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렇게 찍어온 노트를 보며 녹음한 강의를 듣고 또 들었고, 고군분투하는 시간이 쌓이면서 점차 수업에 적응했습니다. 초기의 긴장감과 두려움은 점점 배움의 즐거움으로 변했고, 언어의 장벽도 서서히 극복해나갔습니다. 대학에서의 나날은 꿈꿔왔던 그대로, 미술의 세계에 흠뻑 빠져들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독창적이고 때론 충격적인 학우들의 작품에 놀라기도 하고 새로운 연구 접근 방식에 감탄하기도 하며, 저는 열띤 토론과 비평 속에서 미술에 대한 폭넓은 관점과 지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 학자들뿐 아니라 전 세계의 미술학자들이 진행해온 방대하고도 집요한 연구들을 접하며, 때로 큰 감명을 받기도 했습니다. 세계 그 어느 도시보다 더 예술을 사랑하는 파리에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훌륭한 전시가 끊임없이 열리는 그곳에서 저는 그야말로 미술창작과 이론연구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이렇게 미술에 대한 다양한 접근과 분석에 대해 익히는 동안, 전자도서관을 이용해 우리나라의 논문을 찾아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읽다 보면 내용이나 전개 방식이 아쉬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주제와 작품을 대하는 방법이 다소 합리적이지 않거나 주관적이기도 했고, 최초 번역자의 실수나 오역으로 인해 잘못 알려진 정보도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이를 그대로 인용한 까닭에 논문의 연구 방향 자체가 미묘하게 틀어진 것을 보기도 하였습니다. 확인이 되지 않은 인터넷 상의 잘못된 정보를 가져온 내용도 꽤 있었고요. 어쩌면 많은 사람이 미술에 대한 잘못된 사실들을 알고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일었습니다.

미술 창작이 주는 환희, 감상의 즐거움을 공유하고 싶다는 강한 열망과 우리나라에 잘못 알려진 내용을 바로잡고 싶다는 생각을 키워오던 중, 저는 우연히 전환점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전 세계에 닥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프랑스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이 외출 제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고, 학교 수업 역시 모두 온라인으로 전환되었지요. 꼼짝없이 집에 갇히게 된 저는 유튜브 채널 〈예술산책〉을 개설했습니다. 수업 시간에 특별히 재밌게 다루고 토론했던 주제들을 공유하고자 했습니다. 친구를 만나 함께 교정 뒤뜰을 산책하며 수다 떨듯이, 파리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오늘 있었던 미술 수업 이야기를 나누듯이, 예술에 관심이 있는 분들을 저의 여정에 초대해 생각을 나눠보고 싶었지요. 몇 년간 필기하며 쌓아온 노트들을 펼쳐 들었고, 잘못된 내용이 없는 영상을 만들기 위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습니다.

 

감사하게도 많은 분이 제 채널을 좋아해주셨고, 현직 미술 선생님들께서도 수업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지 동의를 구해왔습니다. 댓글을 통한 활발한 소통은 제게 큰 기쁨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 공감과 응원에 힘입어 제 콘텐츠를 이렇게 책으로 엮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는 예술의 중심지 파리 미술대학 강의실에서 현재 가장 뜨겁게 다루고 있는 주제들이 담겨 있습니다. 가볍기만 한 내용보다는 주제마다 조금은 더 깊은 지식을 나누고자 했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학술적이거나 난해한 이야기는 아니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 모든 열정과 노력을 쏟았던 미술 수업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뿐 아니라, 미술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누구나 재밌게 읽을 수 있습니다. 현대미술에 대한 반감과 거부의 시선을 돌리고, 쉬운 이해를 돕고자 작품 탄생부터 살피며 흥미로운 미술 에피소드들을 가져왔고, 미술에 관심은 있지만 어디서부터 접근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께 그림 읽는 방법의 실마리를 제안하고자 하였습니다.

 

미술작품에는 세상과 사람이 담겨 있습니다. 역사적, 사회적 흐름 속에서 인간이 선택하고 행해온 결과이며, 창작자의 심리, 정신적인 표현 그 자체지요. 미술이 재미있는 이유는 절대적 진리를 찾는 과학과 달리 하나의 작품이나 주제, 사조, 아티스트에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며, 그것이 주는 깨달음의 환희가 있기 때문입니다. 작품을 마주한 뒤 직감적으로 느낀 것부터 이론적인 분석에 이르는 과정이 주는 즐거움과 공감, 다양한 관점의 발견이 나와 우리, 이 세계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 또한 미술 연구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겠습니다.

2023년 가을, 파리에서

예술산책 김진






CLASS 1

노르웨이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의 작품 〈절규〉를 아시나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뭉크의 다른 작품들 또한 〈절규〉와 마찬가지로 특유의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가 압도적입니다. 뭉크의 작품은 왜 이토록 묘한 분위기를 풍길까요? 이번 시간에는 뭉크의 삶과 예술에 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가난했던 가정환경과 세기말의 혼란스러운 시대 상황을 겪은 그의 생애는 죽음과 질병에 대한 공포, 그리고 강박관념으로 가득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내내 겪어온 상실과 비관의 감정, 절망의 경험은 훗날 정신질환으로까지 발현되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는 연이어 사랑의 실패를 겪었죠. 뭉크는 자기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습니다.

나의 예술은 자백이다. 작품을 통해 나는 세상과 나의 관계를 분명히 하려고 한다. 이는 에고이즘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내 예술로 자신의 진실을 찾는 데 도움을 얻을 거라 생각한다.

염세적 시선으로 가득한 그의 작품들은 개인적 삶에 대한 고백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삶과 죽음 사이에 근원적으로 존재하는 고독과 상실, 불안과 사랑, 질투와 고뇌에 대한 주제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표현주의를 태동하게 한 침울한 천재 뭉크. 그의 삶에는 대체 어떤 사건들이 있었을까요?

1863년, 뭉크는 스웨덴 치하의 노르웨이에서 열렬한 청교도 가문의 군의관 아버지와 병약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유년은 가난과 질병, 가족들의 죽음으로 인해 침울한 나날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다섯 살에 어머니를 폐결핵으로 여의고, 누나 소피 역시 9년 후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당시 어린 그가 겪은 상실의 충격과 고통은 평생 그의 삶을 옥죄는 트라우마가 됩니다.


에드바르 뭉크

| 아픈 아이

1885~1886년경, 캔버스에 유화, 120×118.5cm,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미술관 소장


뭉크 역시 건강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다른 형제들처럼 병약하게 태어났고 만성 천식과 류머티즘을 앓았으며 스페인 독감에 걸리기도 했죠. 정신적으로는 평생 조울증으로 고통받았고, 이로 인해 알코올 중독에 빠져 요양시설에 입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여러 강박관념을 가지게 되었고, 환각으로 괴로워했습니다. 질병이라는 자연의 폭력적인 힘 앞에 내내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던 경험은 그의 작품에서 계속해서 되살아납니다. 〈절규〉의 모티프도 직접 겪은 정신 착란의 기록이라는 고백이 있습니다.

나는 두 친구와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고,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변했다. 나는 기진맥진한 기분을 느끼며 펜스에 기대어 섰다. 세상이 푸른빛 검정의 피오르, 피와 불의 혀로 가득했다. 내 친구들은 계속 걸었지만, 나는 불안에 떨며 서 있었다. 나는 자연을 가로질러 통과하는 끝없는 절규를 느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절규하는 주체가 뭉크가 아닌 자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작품 속 뭉크는 환각과 환청을 통해 자연의 절규를 보고 들었고, 이에 두려움에 떨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자신이 절규한 것이 아니죠. 〈절규〉는 앞쪽에 인물이 배치되어 있고 그 뒤로 긴 대각선으로 이어지는 난간이 있어 시선이 자연히 앞쪽에서 뒤로 이어지는데요. 뭉크가 ‘자연의 끝없이 긴 절규’라고 표현한 것처럼 마치 그 비명이 오른쪽 앞에서 왼쪽 뒤로 흐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의도적으로 이러한 구도를 배치한 것이죠. 그 소실점의 끝에는 피와 불의 혀가 넘실대듯 구불거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정신 착란에 빠진 뭉크는 비명을 지른 것이 자신이었는지 자연이었는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연에 자신의 심리를 투영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연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영혼의 내면도 포함한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뭉크의 예술에는 ‘현대성’이 있다고 분석됩니다. 뭉크가 기술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1880년대 초에는 드가나 르누아르 같은 인상파가 대세를 이루고 있었어요. 1880년 후반에는 폴 고갱이 〈황색의 그리스도 The Yellow Christ〉를, 빈센트 반 고흐가 〈별이 빛나는 밤 The Starry Night〉을 그렸죠. 뭉크 역시 초기에는 인상주의에 뜻을 두고 신인상주의 화풍을 시도했지만, 1889년 부친의 사망을 기점으로 깊은 침체기에 빠져 그림을 그만두게 됩니다. 이후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곳곳을 여행하면서 시간을 보내죠. 특히 1889년과 1892년 사이 파리에 자주 오가며 고흐나 툴루즈 로트레크, 피사로, 모네, 휘슬러, 쇠라의 작품을 접합니다. 뷔야르나 보나르 같은 나비파와 독일 상징주의 회화는 그에게 더욱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그의 작품은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띠기 시작합니다. 아르누보 예술처럼 구불거리는 곡선을 주로 쓰면서 종합주의 1 경향을 띠게 된 것이죠. 그는 당대의 미학적 논쟁에도 관심을 가졌고 당시 새롭게 등장한 사진이나 영화 등의 기술에도 크게 매료되었습니다. 뭉크는 자신의 일기장에 이렇게 씁니다.

우리는 더 이상 실내 인테리어나 책 읽는 사람들, 뜨개질하는 여성을 그리지 말아야 한다. 그림의 주제는 숨 쉬고 느끼며 고통받고 사랑하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그는 예술을 통해 타인을 바라보는 관찰자로서가 아닌, 자기 경험과 고뇌를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당대의 일상적인 풍경이나 종교, 그리스・로마 신화, 역사적 사건을 담기보다 자신이 겪었던 고독과 상실, 불안과 질투, 두려움과 무기력, 죽음과 질병에 대한 공포와 강박을 자서전처럼 그려냈습니다. 그리고 맞닥뜨린 환경에 대응하는 자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마치 의사가 환자를 들여다보듯 임상적인 방식으로 자기 삶을 탐색하는 현대적 예술가의 시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뭉크는 작품을 통해 그가 겪은 고통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보편적 운명이라는 것을 일깨우며 감상자가 진정한 자아를 대면하기를 제안합니다.

그의 그림은 독창적이면서도 서투른 듯 거칠며 무언가 조화롭지 못한 듯 보입니다. 분노에 차 그림을 그린 것 같기도, 미완성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뭉크는 이러한 공격적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형식을 시도했고, 끊임없이 실험했습니다. 그가 사용한 색들은 일상의 자연스러운 색과는 달랐습니다. 그림의 색상은 그의 심리를 그대로 대변합니다. 자신이 겪은 감정과 고뇌, 불안 등을 보다 극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부자연스러운 색깔을 선택하고, 보색대비를 활용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에드바르 뭉크

| 불안

1884년, 캔버스에 유화, 94×74cm,

노르웨이 오슬로 뭉크 미술관 소장

뭉크의 작품에는 이처럼 빨간색 옆에 녹색을, 노란색 옆에 파란색을 배치한 경우가 많다.


게다가 뭉크 작품 속의 선은 매우 날카롭거나 구불거리고 불안정하며, 이미지는 현실의 단순한 복제를 넘어서 변형되어 있습니다. 이는 감상자들이 근본적인 감정을 더 강렬하게 느낄 수 있도록 선택한 장치입니다. 그는 작품에 기묘한 실험을 더하기도 합니다. 준비되지 않은 캔버스에 바로 물감을 칠하거나 악천후에 캔버스를 밖에 내놓기도 했고, 나무의 결을 다듬지 않고 거친 표현이 그대로 보이도록 해 재료가 지닌 효과를 드러내고자 했죠. 당시의 시선으로 보자면 미치광이처럼 보일 수도 있었겠네요. 그래서일까요? 그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오랜 기간 냉담했습니다. 그러던 중 1892년 11월, 뭉크는 베를린에서 예술가로서 큰 기회를 마주하게 됩니다. 베를린 아티스트 연합에 초대되어 50여 점의 작품을 전시하게 된 것이죠. 그러나 뭉크의 직설적이고 거친 느낌의 작품들은 곧 예술적 파장을 몰고 왔고, 그는 전시 일주일 만에 모든 작품을 내려야 하는 수모를 겪습니다. 하지만 곧 반전이 일어납니다. 이 사건으로 이름을 알린 뭉크는 독일의 예술 수집가와 갤러리의 눈에 띄었고, 그들에게 후원을 받아 작품 활동을 계속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뭉크의 예술 세계를 말할 때 ‘생 (삶)의 프리즈 The Frieze of Life’ 작품 구성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프리즈란 일반적으로 건축에서 장식적 주제를 반복하여 구성되는 수평의 띠 모양 부분을 말합니다. 그는 왜 작품 시리즈에 〈생의 프리즈, 삶과 사랑과 죽음의 시 A Poem about Life, Love and Death〉라고 이름을 붙였을까요? 뭉크가 자신의 예술을 자서전처럼 그렸다고 한 데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는 인간의 삶을 주제로 생명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시간적 순서에 따라 그림을 전시실의 벽면에 걸었습니다. 그가 평생 그린 작품의 대부분이 이 시리즈에 포함되지요. 그가 구상한 ‘생의 프리즈’는 다음과 같이 네 개의 큰 테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사랑의 자각 Seeds of Love

2사랑의 개화와 쇠퇴 The Flowering and Passing of Love

3삶의 고뇌 Anxidety

4죽음 Death

이 시리즈는 삶의 흐름에 따라 구성된 것이기 때문에, 뭉크는 하나의 작품이 팔리면 그림을 다시 그려 채워 넣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의 주요 작품을 여러 번 반복해 그리며 몇 가지 버전으로 완성하기도 했습니다. 그림에서 판화까지 장르에 구분이 없었죠. 그는 이 작업을 단순한 복사가 아닌 심화 과정으로 인식했습니다.

뭉크의 〈생의 프리즈〉 전시 풍경 기록 사진

네 개의 테마 분류를 살펴보면 뭉크는 사랑과 성적인 주제를 인간의 본질적 삶을 가로지르는 핵심 요소로 여기면서도, 이 치명적인 매혹을 고뇌의 근원이자, 나아가 마치 삶을 위협하는 요소로 생각한 것처럼 보입니다. 뭉크는 사랑과 죽음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죠. 이러한 예술적 관념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의 연애사는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뭉크는 80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결혼한 적이 없으며, 짝사랑했던 여인들에게 숱한 거절을 겪으며 여성 혐오적 시각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종종 남성을 괴롭히고 끝내 파멸시키는 흡혈귀, 팜므파탈적 존재로 그려져 있습니다. 〈달빛 속 물가에서 입맞춤〉, 〈뱀파이어〉에서 볼 수 있듯이 말이죠. 특유의 우울한 감성이 엿보이는 뭉크의 그림에는 해보다는 달이 자주 등장합니다. 뭉크가 짝사랑했던 여인과의 밀회는 달빛 아래 숲속이거나 해변이었기 때문이죠. 〈달빛 속 물가에서 입맞춤〉 등 그의 그림에 종종 등장하는 물 위에 비친, 소문자 i 모양의 ‘달의 기둥’은 묘하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이 로맨틱한 자연환경은 어두운 배경과 대비되어 그가 가졌던 내면의 긴장감을 고스란히 비추고 있습니다. 뭉크는 자신의 부정함을 밤의 어둠 속에 숨기고 싶어 했지만, 물 위로 환하게 비치는 달빛은 죄책감과 두려움의 심리를 들춰내는 장치로 등장합니다.


에드바르 뭉크

| 달빛 속 물가에서 입맞춤

1914년, 캔버스에 유화, 77×100cm,

노르웨이 오슬로 뭉크 미술관 소장


에드바르 뭉크

| 뱀파이어

1895년, 캔버스에 유화, 91×109cm,

노르웨이 오슬로 뭉크 미술관 소장


뭉크의 연애사가 더욱 궁금해집니다. 1885년, 스물두 살의 뭉크는 첫사랑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의 첫사랑 상대인 밀리 톨로는 이미 결혼한 상태로, 뭉크에게 특별한 감정은 없었죠. 하지만 둘은 달빛이 비치는 숲속에서 불장난처럼 밀회를 즐기곤 했습니다. 뭉크는 밀리가 이혼하고 자신에게 와줄 것을 기대했지만, 밀리는 이혼 후 다른 남자와 재혼했고 뭉크에게는 그 어떤 기별도 하지 않았습니다. 뭉크는 크게 실망하고 배신감에 휩싸였습니다. 이때의 좌절감이 상당히 컸던 것 같습니다. 그 후 여러 차례 다른 연인을 만나기도 했지만, 밀리는 뭉크의 작품에서 내내 흡혈귀 같은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1895년경 제작된 컬러 석판화 〈마돈나〉를 볼까요? 테두리를 살펴보면 정자와 태아가 그려져 있는데요, 생동감이 없고 병약한 모습입니다. 인간은 질병과 죽음의 운명을 거스를 수 없는 나약한 존재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죠. 한편 검고 푸른 배경 앞에 나체의 여성에게서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느껴집니다. 뭉크가 여성과의 사랑으로 인해 겪은 황홀감과 거부당했던 고통 사이를 오가며 끝없는 회한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에드바르 뭉크

| 마돈나

1895~1902년, 석판화, 60.5×44.4cm,

일본 구라시키 오하라 미술관 소장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사춘기〉 속 소녀는 아직 성에 눈뜨지 않은 순수한 얼굴을 하고 살짝 겁먹은 표정으로 감상자를 응시합니다. 소녀 뒤에는 크고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데요, 어쩐지 위협적인 모습이죠. 이 소녀 또한 나중에 다른 남성들에게 큰 고통을 줄 잠재성을 가졌음을 암시하는 장치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에드바르 뭉크

| 사춘기

1895년, 캔버스에 유화, 151.5×110cm,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미술관 소장


1897년에 만난 마틸드 툴라 라르센은 밀리와의 이별을 뒤로한 채 잠시 열정적인 사랑을 나눈 여인입니다. 하지만 툴라의 심한 집착에 이번엔 뭉크가 헤어짐을 통보하였죠. 1902년, 툴라의 마지막 부탁으로 뭉크의 아틀리에에서 만난 둘은 말다툼을 하게 되고, 툴라가 총기 사고를 냅니다. 이 사고로 뭉크는 왼손 중지를 잃게 되죠. 그 후 뭉크는 ‘살인자’ 등으로 여성을 더욱 과격하게 묘사하기도 하기도 하고 마치 마녀나 악마와 같은 모습으로 그리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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