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환 기자2024. 5. 2. 16:00
국내 동성 커플 중에는 처음으로 딸을 출산한 김규진(32), 김세연(35) 부부의 인터뷰가 온라인상에서 화제다. 지난달 30일 코스모폴리탄은 이들 부부의 인터뷰를 온라인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안전 문제 등으로 딸 ‘라니’의 얼굴은 공개되지 않았다.
인터뷰에서 세연 씨는 ‘가족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거창할 것 없다”며 “서로 사랑하고, 내가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가족”이라고 말했다. 규진 씨는 “민법상 가족 범위는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는 물론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까지”라면서 “그런데 재밌는 건 후자의 경우 ‘생계를 같이 할 경우에만’이라는 단서 조항이 있다. 함께 지내는 게 가족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저는 혈연만이 가족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아내가 말한 것처럼 서로를 가족이라 생각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에세이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의 저자 규진 씨는 지난 2019년 동성 연인 세연 씨와 미국 뉴욕에서 정식 부부가 됐다. 그해 11월 한국에서도 결혼식을 올린 규진 씨는 신혼 여행 휴가를 받기 위해 회사에 청첩장을 내 큰 주목을 받았다.
이후 규진 씨는 지난해 벨기에의 한 난임병원에서 무기명·랜덤 방식으로 정자를 기증받아 임신에 성공했다. 한국에서 시술받는 것도 고려했지만 정자 기증자를 찾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법적 부부나 사실혼 이성애 부부에게만 정자를 제공해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지난해 8월 사랑스러운 딸 ‘라니’가 태어났다. 국내에서 동성 커플의 임신과 출산이 공개된 건 처음이다.
성 소수자 부부로서 어떻게 출산할 생각을 했는지 묻자 규진 씨는 프랑스에서 만난 여성 상사가 자신에게 한 말을 전했다. 그는 “원래는 둘 다 아이 생각이 없었다. 아내는 출산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 저는 좋은 부모가 될 자신이 없었다”며 “(그러던 중) 제가 프랑스로 파견을 갔다. 정자 기증 센터와 접근성이 좋아지니 (아이를 갖는걸) 시작하기 용이했다”고 말했다. 이어 “프랑스 본사에 출근한 첫날, 이성애자 여성인 상사와 점심을 먹다가 ‘가족들은 어디에 있어?’라기에 제가 ‘아내는 한국에 있어’라고 했는데 ‘그래? 애는 가질 거지?’라고 말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법적 부부도 아닌데 엄마라고 하는 게 맞느냐’고 의문을 던지는 일부 시각에 대해 세연 씨는 “그들의 인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내가 엄마라고 느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규진 씨 역시 “그런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놀랍다. 그렇게 치면 입양한 아이나 재혼 가정의 아이는 자녀가 아닌 거냐”고 되물었다.
단지 성 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던지는 악플에 대해 규진 씨는 “저희를 실제로 만나면 절대 그런 말을 못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규진 씨는 “맘카페뿐 아니라 모교 커뮤니티에도 (악플이) 올라오고, 아내가 의사인 걸 밝혔는데 의사 커뮤니티에도 올라온다”며 “한번은 맘카페의 악성 게시글에 ‘저도 엄마여서 여기에 있는데요’라고 댓글을 달았더니 너무 죄송하다며 지우더라”고 일화를 공개했다.
두 사람은 향후 아이에게 어떻게 ‘젠더 교육’을 시킬 것인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규진 씨는 “어떻게 자라든 전형적이진 않을 것”이라며 “벨기에 클리닉에서 ‘주변에 매일 보는 남성이 없을 텐데 그런 점은 어떻게 대응할 거냐’는 질문을 받았다. 상담사분이 필터링으로 걸러진 사람들만 보는 게 아니라 남성의 장점과 단점, 여러 면을 다 보여줘야 아이가 다양한 성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했다. 세연 씨도 “우리가 엄선해서 어른들을 보여준다면, 그건 현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난관은 여전할 전망이다. 두 사람은 한국에선 법적 부부가 아니기 때문에 부부나 부모로서 법의 보호나 혜택 등을 누릴 수 없다. 규진 씨는 “저희가 돈을 벌고 건강할 때까진 큰 문제가 없겠지만 나이가 들어 병에 걸리거나 돈을 벌 수 없게 되면 법적 가족이 아니라는 사실이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두 사람은 모두가 각자 위치에서 긍정적으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세연 씨는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자신을 긍정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규진 씨는 “이 사회의 모두가, 모든 가정이 다 똑같은 모습이라면 이렇게 재미있진 않을 것”이라며 “다들, 함께, 지금까지처럼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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