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은 고령화 사회가 된 한국에서 앞으로 어떤방법으로 노인정책을 펼쳐야할지 궁금해서 읽어본다. 아마도 나도 이제 고령인구축에 발을 담은시기라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볼수 있는것같다. 몇가지 기발한 아이디어가 참 실용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치매환자들을 위해서 가짜 버스정거장을 만들어놓고...거기서 버스를 기다리는 환자들을 집으로 데려가는...
이번 한국방문에서도 놀랐다. 지하철을 타면 노인들이 너무 많아서...나는 어려보여서 자리에 앉을 생각도 못한다.
│ 들어가며 │
약 5년 전, 이 책의 전편 격인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길을 찾다》를 출간하면서 머리말에 칠순을 맞이한 아버지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의 일입니다. 신문사 특파원 일을 하고 있어서 부친 칠순 잔치를 도쿄에서 치렀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두 번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 나이도 70, 인생 다 살았구나!’라는 허망함을 안은 채 아들 집을 찾았는데, 웬걸 주변 노인들이 죄다 80 이상이고 90을 넘긴 할머니들도 한 집 건너 한 명쯤 있는 겁니다.
현지의 대중목욕탕을 다녀오신 아버지는 이번에는 탕 속 할아버지들의 미끈한 몸을 보고 또 한 번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사건 이후 몇 년 동안 부친은 나이 얘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당시 70세였던 부친이 지금은 90세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제는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 가는 것도 힘겨워합니다. 필자는 노인 간병에 대해 좀 안답시고 장기 요양 등급을 신청하고, 아버지 침실에 이동형 변기도 갖춰놨지만 간병의 현실이 녹록지 않음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이전 책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길을 찾다》에 일본의 다양한 고령화 대응들을 소개하면서, 첨단기술이 간병 문제를 해결하고 ‘액티브 시니어’의 등장으로 곧 신 新고령사회가 다가올 것처럼 전망했습니다.
지금은 그때의 예견이 어설펐음을 반성합니다. 고령사회에 대해 공부하면 할수록 인류가 처음 경험하는 초고령화 현상은 대증요법과 같은 정책이나 기술로는 해결할 수 없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그렇다고 반성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2025년이면 우리나라도 ‘초고령사회’에 진입합니다. 초저출산 상황을 서둘러 해결하지 않으면 수십 년 후 한국이 소멸한다고 걱정하는데, 초고령화에 빨리 대응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당장 큰 어려움에 처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대응이 정답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2000년 초부터 20여 년간 이어온 일본의 고령사회에 대한 고민과 대처에는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 꽤 많습니다. 일본의 고령화율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2022년 29.1%에 달했습니다. 75세 이상 초고령자도 2,0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세계 최고령국 일본이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가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초고령사회 일본을 보고 있노라면 크게 두 가지 현상에 눈길이 갑니다.
하나는 새로운 문화의 출현입니다. 노인들만의, 고령자 중심의 문화가 아닙니다. 중장년층과 젊은 층의 가치관과 생활 습관의 교집합이 커지면서 전 세대가 한데 어우러지는 사회 분위기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또 하나, 고령화 정책과 기술이 좀 더 정교해지고 고령 친화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점입니다. 과거의 대응이 탁상에 머물렀다면 지금 일본의 대응은 현장으로 깊게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책은 일본의 이 같은 변화와 도전의 사례들을 꼼꼼히 담았습니다.
먼저 ‘함께, 천천히’는 고령사회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핵심 키워드입니다.
치매 고령자와 가족, 지역 주민들이 한데 모여 교류하는 치매카페가 지역 곳곳에 있습니다. 버스 노선이 폐지되면서 발이 묶인 고령자를 위해 상점가 주인들이 힘을 합쳐 버스와 택시의 중간 형태인 AI택시를 운행합니다.
고령자들이 초조해하지 않도록 슬로 계산대를 설치한 대형 마트가 있고, 고령자의 짝꿍이 되어 휴대폰 조작이나 IT 기기 사용법을 가르쳐주고 말동무도 돼주는 젊은 대학생들이 있습니다.
이 책은 중년 히키코모리의 ‘서바이벌 전략’을 짜고, 고령 직원을 위한 업무 매뉴얼을 만드는 등 고령사회를 위한 일본의 정책적인 대응들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간병에도 품격이 필요합니다.
‘버스가 오지 않는 정류장’을 만들어 치매 환자들의 배회를 예방하는 요양원이 있습니다. 첨단 배설 처리 장치는 배설 케어로 인한 고령자 당사자와 간병 가족의 심적, 신체적 고통을 완화해줍니다.
병원과 요양원을 하나로 합친 의료・간병 복합체가 있고, 마을 전체가 하나의 병원이 되어 혼자 사는 고령자들의 재택 간병을 실현하는 커뮤니티 케어 도전기도 배워볼 만합니다.
활기찬 고령사회는 유쾌한 시니어가 만들어갑니다.
일본에는 평균 연령이 60세가 넘는 어른 대학이 있습니다. 시니어 대학생들은 또 한 번의 학창 시절을 만끽합니다. 한때 젊음을 분출했던 시내 번화가로 귀환한 시니어들이 젊은이들의 공간에 스스럼없이 녹아듭니다. 유쾌한 시니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여행과 취미를 함께하고, 인생의 마무리도 주체적으로 준비합니다.
초고령사회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일본 편의점은 고령자들의 생활 인프라로 정착된 지 오래입니다. 편의점이 시니어 고객을 잡기 위한 격전지가 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피트니스와 의료가 결합한 메디컬 피트니스는 예전에 없던 새로운 건강수명 비즈니스입니다. 성인 기저귀 쓰레기를 땔감으로 재 再자원화하는 중소기업은 해당 기술을 중국 등 해외로 수출하는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책에서 소개한 사례 중에는 우리에게 생소하거나 이질적인 것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례들이 출현하기까지의 과정을 들여다보면서 그 속에 숨어 있는 생각과 고민을 추적해보는 시도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이 그 중계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기쁘겠습니다.
책을 세상에 내놓을 때마다 겁이 많아집니다. 그럼에도 매경출판 허연 대표님과 편집자의 응원 덕분에 다시 한번 용기를 냈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책을 낸다는 것은 가족의 희생과 배려를 필요로 합니다. 취업과 대학이라는 크나큰 도전에 나서는 아들 준과 딸 민에게 고마움과 함께 응원을 보냅니다. 마지막으로 필자의 출간 작업은 사랑하는 아내, 번역가 김지영과의 공동 작업임을 밝혀둡니다.
함께 그리고 천천히

스타벅스, 치매와 만나다
치매 가족들의 마을 거점 ‘스타벅스 치매카페’
초고령사회 일본에는 ‘치매카페’라는 것이 있다. 치매와 관련된 사람들이 모여서 담소를 나누는 곳이다. 치매 환자와 그 가족, 간병인 그리고 전문가와 지역 주민들이 함께 모여 차를 마시거나 간단한 식사를 하면서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고 정보도 공유한다. 치매를 특별한 것이나 기피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주변의 일상사로 받아들이려는 일본 사회의 노력 가운데 하나이다.
2012년 일본 정부의 ‘치매 정책 5개년 계획’에 2025년까지 일본의 전 시·읍·면에 치매카페를 설치한다는 목표가 명기되면서 치매카페는 빠르게 늘어났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일본 전국에 7,900여 개의 치매카페가 운영되고 있다.
그동안 치매카페는 주로 지역의 공공시설이나 빈 가게를 활용해 운영돼왔는데, 요즘 들어 새로운 분위기의 치매카페가 등장하고 있다. 그중의 하나가 ‘스타벅스 치매카페’이다. 세계적인 커피 체인 스타벅스가 지역 내 치매카페 역할을 하면서 일본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다.
도쿄 東京 서남쪽 외곽지역인 마치다 町田시. 이곳에는 D-카페라는 푯말이 붙은 스타벅스 매장이 8곳이나 있다. D-카페란 치매를 뜻하는 영어 Dementia의 앞 글자를 딴 것으로, 마치다시는 치매카페를 D-카페로 부르고 있다. 이곳의 스타벅스 치매카페는 오전 10시부터 정오까지 운영된다. 8곳의 스타벅스가 순번을 정해 매달 1회씩 치매카페를 순환 운영한다.

일본 도쿄 외곽지역 마치다시의 한 스타벅스 매장. 마치다시는 스타벅스와 손잡고 마을 8개 매장에 ‘치매카페’를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출처: 마치다시 홈페이지
스타벅스 치매카페에 특별한 프로그램이나 이벤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고령의 치매 환자들이 가족과 함께 스타벅스를 찾아 커피나 음료 등을 즐기면서 잠시나마 일상의 여유를 즐긴다. 같은 고민거리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다른 테이블과의 교류도 자연스럽다. 이곳에서는 치매 환자 고객을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이들이 일반 손님과 자연스럽게 섞이고 어울리면서 치매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이해가 높아지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스타벅스 치매카페와 다른 치매카페의 차이점은 역시 ‘스타벅스’라는 브랜드 파워다. 스타벅스라는 브랜드 이미지 덕분에 치매 환자나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카페를 찾는다고 한다. 기존의 치매카페는 ‘치매’라는 이미지 구분이 강해 부담감을 준 반면 스타벅스 치매카페는 보통의 카페를 즐긴다는 느낌이 강하다는 것이다.
마치다시 스타벅스 치매카페의 출현은 치매카페를 기획하던 한 NPO 법인 (일본의 지역 밀착형 사회적 기업)의 아이디어와 한 스타벅스 점장의 의지가 일치하면서 성사됐다. 2016년 초 치매카페 설치를 추진하던 한 NPO 법인이 치매 환자나 가족들의 의견을 들어보니 “딱딱한 분위기의 공공장소보다는 동네 카페 같은 편안한 곳이면 좋겠다”, “이왕이면 스타벅스 같은 곳이면 좋겠다”는 얘기가 많아 스타벅스 치매카페를 추진하게 됐다고 한다.
마침 당시 한 스타벅스 매장의 점장도 지역 고령자들을 도울 수 있는 지역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찾고 있었다. 스타벅스 매장들은 사회공헌 활동의 하나로 ‘커뮤니티 커넥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활동 내용은 주로 지역 어린이를 위한 바리스타 체험, 동네 청소 등이 대부분이었다. 이 점장은 “우리 지역 주민의 상당수가 할머니, 할아버지인데, 이분들을 응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어 아쉬웠다”고 했다. 양측 의견이 일치하면서 곧바로 그해 7월 26일 스타벅스 치매카페 1호점이 문을 열었다. 치매 가족과 주민들의 반응이 좋아 스타벅스 치매카페는 8개까지 빠르게 늘어났다.
스타벅스 치매카페 직원들은 치매 관련 교육을 이수하고 치매 서포터즈 자격증을 취득한다. 치매카페 직원 손목에는 서포터즈에게 주는 오렌지 링이 채워져 있다. 요즘 스타벅스 치매카페에서는 치매 환자 고객들의 작품 사진이 전시되기도 하고, 치매 환자나 가족의 콘서트가 열리기도 한다. 이를 위한 음향 설비를 갖춘 곳도 있다.
마치다시는 스타벅스 치매카페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닌 고령화에 대한 지역 커뮤니티의 새로운 도전이라고 강조한다. 치매카페를 ‘특별한 장소’가 아닌 ‘일상의 장소’로 바꿔 치매 환자나 가족 그리고 지역 주민들이 부담 없이 찾아가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기대한다는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스타벅스 이외에 세계적인 햄버거 체인 맥도널드의 일부 매장에서도 치매카페를 기획하는 등 유명 식음료 체인점으로 치매카페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일본의 치매 인구는 2021년 기준 630만 명을 넘는다. 일본 <고령사회백서>에 의하면 2025년에는 730만 명을 넘어 고령자 5명 중 1명이 치매를 겪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일본 정부는 2012년부터 ‘오렌지 플랜’이라는 치매 5개년 계획을 만들어 치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특히 2015년에는 두 번째 치매 5개년 계획인 ‘신 新오렌지 플랜’을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치매 가족 지원과 치매 환자의 사회화 교류 등을 내용으로 하는 치매카페 설치가 핵심 과제로 명시되어 있다.
AI택시, 고령자의 일상을 바꾸다
버스와 택시의 장점만 딴 ‘주문형 교통’의 등장
초고령사회 일본에서는 노선버스가 폐지돼 일상생활에 불편을 겪는 노인들이 많다. 주로 지방 도시나 시골 마을에서 그렇지만, 최근에는 대도심 인근에서도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일본 <교통정책백서>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20년까지 폐지된 버스의 노선 총 길이는 무려 1만 3,845㎞, 일본에서 남미 과테말라까지 갈 수 있는 거리라고 한다.
일본 교통당국은 고령자들의 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를 막기 위해 면허 갱신 때 신체검사를 강화하는 등 고령자 면허 반납을 적극 유도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승객 감소로 적자에 시달리는 공공 노선버스를 줄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초고령사회 일본이 안고 있는 교통의 딜레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0년대 중반부터 일본 지자체들은 노선버스를 대체하는 ‘커뮤니티 버스 community bus’와 ‘디맨드 demand 교통’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교통수단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커뮤니티 버스라는 이름은 지역 주민이 함께 이용하는 버스 안에서 자연스럽게 주민들의 커뮤니티가 형성된다는 뜻에서 붙여졌다. 예약을 통한 주문형 교통이라는 뜻에서 디맨드 교통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교통수단은 정해진 시각과 정류장을 이동하는 노선버스와 달리 승객들의 예약이 있을 경우 거기에 맞춰 운행하는 예약제 합승 이동 서비스이다. 버스와 택시의 중간 형태라고 생각하면 된다. 고령자나 장애인 등 이른바 ‘이동 약자 弱者’들의 대체 이동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2022년 닛세이기초연구소가 2020년 <국토정책백서>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시점 전국 지자체의 30%에 달하는 555곳에서 디맨드 교통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자의 일상을 바꾼 AI택시
출처: 초이소코 홈페이지
하지만 디맨드 교통의 성과는 지자체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승객이 많지 않은 지역을 운행하고 있어 이용객 확보가 제대로 되지 않고, 낮은 운임으로 인해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아 디맨드 교통의 지속 가능성에 문제가 제기돼왔다. 실제로 이용객이 거의 없어 디맨드 교통의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예산 부담으로 운행을 중단하는 지자체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방식의 디맨드 교통 시스템이 출현해 일본 교통당국과 지자체의 기대를 불러 모으고 있다. AI (인공지능) 기술과 새로운 마케팅 기법으로 교통 딜레마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곳이 있는데, 도요타자동차 계열사로 내비게이션 기술 전문업체인 (주)아이신 정기 アイシン精機 (이하 아이신)가 그 주인공이다.
아이신은 2018년 AI 기반 온 디맨드 On Demand합승택시 서비스인 초이소코 チョイソコ를 개발해 선보였다. 실증 실험을 거쳐 2021년부터 정식 운행을 시작했다. 지자체들은 초이소코의 비즈니스 모델에 큰 관심을 보였고 현재 전국 30여 개 지자체에서 시범 또는 정식 운행되고 있다.
초이소코 운용 시스템을 소개하면 이렇다. 지역마다 운용 방식이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아이치 愛知현 도요아케 豊明시의 초이소코 운용 시스템을 보면, 하루 운행 시간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두 대의 9인승 왜건형 차량이 운행한다. 운임은 1회 승차에 200엔 (약 2,000원). 등록한 회원만 이용할 수 있다.
운행 방식은 이용자가 사전 예약하면 아이신의 자동 배차 시스템에 의해 같은 시간대에 같은 방향으로 향하는 승객들을 분류해 그룹핑하고, 이에 맞춰 주행 경로가 자동으로 설정된다. 사전 예약은 인터넷 홈페이지나 스마트폰 앱을 이용하거나 접수센터에 전화로 할 수 있다. 현재 접수의 99%가 전화 예약이라고 한다. 이용자가 대부분 고령자여서 디지털 장벽이 높기 때문이다. 회원 수는 1,868명 (2021년 1월 말 기준)이며 90%가 65세 이상 고령자다.

초이소코 운용 시스템
출처: (주)아이신 정기 홈페이지
여기까지만 보면 기존의 디맨드 교통과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초이소코 AI택시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초이소코만이 갖고 있는 세 가지 경쟁력 때문이다. AI 기술을 활용한 운용 시스템, 지역 기업들의 협찬을 기반으로 하는 수익성, 서비스의 다양화를 통한 수익 다각화가 그것이다.
먼저 AI 기반 운용 시스템. 아이신은 도로 환경이나 과거의 주행 데이터 등을 기반으로 자체 개발한 AI 시스템이 최적의 운행 루트를 선정한다. 지역마다 다른 도로 사정을 세밀하게 사전 조사하고, 실시간 변하는 교통 흐름에 즉각적으로 대응한다. 자동차 내비게이션 제조업체인 아이신의 고도의 시스템이 활용된다. 아이신의 첨단 배차 시스템은 고령자가 대부분인 회원들이 정류소에서 오랜 시간 기다리는 불편을 최소화한다.
초이소코의 또 하나의 강점은 수익성이다. 이 부분이 다른 디맨드 교통과 가장 큰 차이점으로 꼽힌다. 초이소코 정류장은 여타 디맨드 교통과는 조금 다른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고령자들의 거주지 인근, 지역 공공시설, 공원 이외에 슈퍼, 약국 등 지역 상업시설과 의료기관에 정류장을 배치한다.
정류장이 설치된 상업시설과 병원 등은 초이소코의 스폰서로 등록, 협찬금을 낸다. 스폰서에 정류장을 둠으로써 고령자의 집객 효과를 노리는 구조인데, 스폰서에는 주로 병원, 클리닉 등 의료기관이 많고 약국, 온천, 호텔 등이 참여하고 있다. 도요아케시 초이소코에는 시청 등 공공시설, 의료기관, 금융기관, 소매점, 휴게시설 등 수십 개의 스폰서가 협찬금을 내고 있다. 초이소코 통신이라는 홍보지를 발행해 스폰서 기업들을 교통 이용자에게 홍보하고, 또 아이신과 스폰서가 함께 고령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마케팅 이벤트를 기획해 실시하고 있다. 일례로 스폰서 매장 내에서 고령자를 위한 매직쇼를 진행하기도 한다.
수익성 개선을 위해 차량 운행도 지역 택시회사에 위탁, 고정비용을 줄이고 있다. 지역 택시조합에 사업을 위탁하는 것은 초이소코 운행으로 인한 해당 택시조합과의 마찰을 피하고 ‘공생’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물론 지자체의 보조금도 주요 수익원인데 도요아케시는 연간 1,600만 엔 (약 1억 5,000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승객의 안정적 모객과 수익원을 다양화하기 위한 서비스 다각화도 초이소코만의 경쟁력이다. 먼저 초이소코를 플랫폼으로 하는 서비스를 추진하고 있는데, 코로나19 당시 경영난으로 힘들어하던 음식점을 지원하는 음식택배 ‘메시 클루’ 서비스를 하기도 했다. 한 번에 50인분까지 대량 수송이 가능한 점은 우버 이츠 등 여타 식사 배달 서비스에는 없는 장점이다. 2021년 10월부터는 고령자 돌봄 서비스 ‘초이 토크’를 시작했다. 접수 콜센터의 오퍼레이터가 주 1회 회원 고령자에 안부 전화를 걸어 대화를 나누는 서비스다. 사전에 입수한 가족들의 근황을 전달하기도 한다.
초이소코는 ‘잠깐 그곳까지 함께하겠습니다’라는 일본어를 축약한 용어다. 서비스의 본래 목적인 고령자의 외출을 촉진해 건강을 증진하고, 이를 통해 지역 의료 및 간병비를 줄이려는 공공재 서비스다. 따라서 각 지자체가 예산을 들여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지역 고령자의 건강 증진이라는 공공적 성격을 띠지만 기업 아이신에는 새로운 미래의 수익사업이기도 하다. 초이소코 서비스를 받는 고령자는 저렴한 가격으로 이동의 편리성을 확보하는 이점이 있다. 일석삼조인 셈이다. 도요아케시가 2021년 초이소코 이용자 600명을 대상으로 이용과 관련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초이소코를 이용한 것이 계기가 돼 다시 외출하게 됐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20%를 넘었다고 한다.
장 보기, 묘지 청소, 산보 동행, 취미 상대까지
진화하는 가사 대행 서비스
도쿄 외곽의 한 맨션에서 혼자 살고 있는 유코 할머니. 올해 83세 생일을 맞이한 유코 할머니는 화요일 아침을 손꼽아 기다린다. 매주 이때는 요리 대행 전문 도우미와 함께 식사를 마련하는 시간이다.
아침 8시, 유코 할머니 집을 찾은 여성 도우미는 먼저 할머니의 몸 컨디션을 체크한다. 별다른 이상이 없으면 이날 만들 점심 메뉴를 정한다. 메뉴가 결정되면 여성 도우미는 유코 할머니와 함께 가까운 마트로 장을 보러 간다.
식재료를 구입해 돌아온 여성 도우미는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한다. 유코 할머니는 곁에서 간단한 허드렛일을 도와준다. 여성 도우미는 아침에 사온 식재료뿐만 아니라 유코 할머니 냉장고에 들어 있는 재료들을 최대한 활용해 오늘의 요리를 완성한다. 요리는 맛도 맛이지만 여러 가지 영양 밸런스가 고려된 건강 식단이다.
메인 요리로 끝이 아니다. 냉장고 안을 꼼꼼히 살핀 여성 도우미는 서브 메뉴를 만들기 시작한다. 오이, 버섯, 생선 등을 재료로 사용해 절임과 구이 등 여러 가지 반찬을 만든다. 대략 일곱 가지 정도를 만들어 일주일간 먹을 수 있게 냉장고에 보관해둔다.
뒷정리까지 모두 마친 중년의 여성 도우미가 이날 오전 유코 할머니 집에 머문 시간은 3시간 남짓. 유코 할머니의 화요일 식사 이벤트는 프리미엄 가사 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카지 CaSy (가사라는 뜻의 일본말)의 정기 요리 대행 서비스 상품이다. 여성 도우미는 카지에서 파견한 영양사 자격증을 보유한 요리 전문사이다.
유코 할머니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혼자서 식사를 준비했다. 요리를 좋아하는 그에게 식사 준비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80세가 넘은 후부터 해가 갈수록 요리는 간소해졌고 그러다 보니 먹는 양도 줄었다. 이를 걱정한 자녀들이 요리 대행 서비스 이용을 권유했고 이후 유코 할머니도 제대로 된 식사를 다시 즐기게 됐다.

프리미엄 가사 대행 서비스 업체 카지는 요리 재료 구입에서부터 잔반 만들기까지 질 높은 요리 대행 서비스를 제공한다.
출처: 카지 홈페이지
일본은 이미 2015년 80세 이상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섰다. 개인 차이는 있지만 후기고령자인 75세를 넘기면 생활의 질에 영향을 줄 정도로 체력이 떨어진다. 80세가 넘으면 그 비율이 급격히 상승하는데, 4명 중 1명이 근육량과 신체 기능이 저하되는 ‘사르코페니아’ 의심자라고 한다. 이처럼 남의 도움 없이 고령자가 오롯이 혼자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80세의 벽은 결코 낮지 않다. 이를 극복하고자 체력을 기르는 근육 트레이닝을 하는 것도 좋지만, 힘든 일들은 무리하지 말고 남에게 맡기는 요령도 필요하다. 그중의 하나가 가사 대행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가사 대행에 대해 이 같은 인식이 확산되면서 일본에서는 관련 서비스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집 청소는 물론이고 장 보기, 요리 대행, 정리 정돈, 묘지 청소 등 일상과 밀접한, 사실상 모든 가사 일을 대신해주고 있다. 몸을 쓰는 일을 넘어 산보 같이 하기, 말상대 해주기, 바둑 대전 해주기 등 심적 도우미 역할까지, 가사대행 서비스의 영역은 크게 확대되고 있다.
인기 급상승 중인 서비스가 요리 대행 서비스이다. 나이가 들면 악력이 떨어져 딱딱한 당근이나 호박을 써는 일도 쉽지 않다고 한다. 식사 준비 대행 서비스는 식재료 준비에서부터 설거지까지 일체의 요리 대행을 해준다. 카지의 홍보담당자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고령자들 사이에서 다양한 반찬을 만들어주는 서비스에 대한 니즈가 많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수요가 많은 게 청소 대행이다. 고령자의 결정적인 신체적 약점은 무릎과 허리이다. 집안의 욕실 곰팡이를 제거하는 일이나 화장실 청소는 하는 사람의 무릎이나 허리에 부담을 준다. 대표적인 청소 대행 서비스업체 베어즈 Bears는 욕실이나 화장실, 부엌, 거실 등을 중심으로 월 2~3회, 하루 3시간 반 정도 청소 서비스를 해준다. 월 2회 정기 이용, 1회 3시간 기준으로 9,900엔 (교통비 별도)도 만만치 않은 가격이지만 “집안 구석구석 깨끗해지면 몸도 마음도 날아갈 듯이 가뿐해진다”라며 고령자들이 꽤 만족한다고 한다. 베어즈는 청소뿐만 아니라 이불 등 세탁물 널기, 불용품 처분, TV같이 무거운 물건 이동 등 몸놀림이 가볍지 않은 80대 고령자들의 세세한 일상사를 도와준다. 10분에 1,200엔이며 기본 출장비는 2인 기준으로 1,000엔이다.
‘사쿠라 서비스’는 성묘 대행 서비스로 유명하다. 명절 성묘 대행과 묘지 청소를 하나로 한 세트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합장 예배, 공물 헌납, 묘석 등 주변 장식품 청소, 잡초 제거, 꽃 물갈이, 선향 제공 등의 일을 대신해준다. 작업 전후의 사진을 찍어 고령자 고객의 메일로 보고한다. 세트 상품은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묘 하나당 8,000엔 정도다.
장 보기 등 구매 대행 서비스도 최근 증가하고 있는 서비스 가운데 하나이다. 80세 이상이면 자동차 운전면허를 반납하는 이들이 꽤 된다. 집 주변에 마트가 없으면 이들은 이른바 ‘구매난민’이 된다. 2015년 경제산업성 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 구매 약자는 전국 700만 명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구매 대행 서비스를 하는 크라우드 케어는 슈퍼마켓이나 편의점 등에서 식료품과 일용품을 대신 사다준다. 한 곳당 서비스 요금은 500엔 (교통비 별도). 구매 대행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있는 항목이 가전 구입 대행이다. 고령자들은 갈수록 다양한 기능이 생기는 가전제품 사용법을 숙지하기 힘들 뿐더러 제품 설명을 이해하기가 어려워 가전 구입을 망설인다. 이 같은 고령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시간당 3,000엔의 가전 구매 대행 서비스가 인기다. 가전 구매부터 설치까지 도와준다.
일본의 가사 대행 서비스는 신체적인 지원을 넘어 심적인 부분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가사 대행 전문회사 ‘더 스킨’은 최근 산보 동행에서부터 말상대까지 해주는 가족 대행 서비스인 더 스킨 라이프케어라는 신상품을 선보였다. 고령자 고객들은 가족에게 말 못하는 속사정까지 도우미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 스트레스 발산 효과가 크다고 업체 관계자는 말한다. 서비스 가격은 월 8시간 이상 이용하는 것을 기준으로 1회 2시간 7,000엔 (교통비 별도)이다.
이 밖에 노안 老眼 때문에 잡지나 신문을 읽기 힘든 고령자들을 위한 음독 서비스도 늘어나고 있다. 새로운 정보나 지식을 자주 접하면 젊어지는 기분까지 느껴 고령자들의 정신 건강에 이롭다. 또 장기나 바둑을 좋아하는 할아버지들을 위한 대전 對戰 상대를 대행하는 서비스도 있다. 이처럼 일상생활의 소소한 곤란을 대행 서비스로 해결해주는 곳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손이 닿지 않은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업자도 출현했을 정도라고 하니, 가사 대행 서비스의 끝을 가늠하긴 힘들어 보인다.
편의점의 슬로 계산대
‘느긋하게 천천히’는 초고령사회 핵심 키워드
“639엔입니다.”
편의점 계산대의 젊은 여직원이 퉁명스럽게 말을 던진다. 할머니 손님은 서둘러 지불하려고 하지만 동전이 지갑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않는다. 젊은 직원이 언짢은 표정을 짓자 할머니의 마음은 급해진다. 할머니 뒤에는 벌써 서너 명이 줄을 서서 계산을 기다리고 있다. 할머니는 바로 뒤에 서 있는 험상궂은 얼굴의 젊은이를 보니 공포감마저 밀려온다. 초조한 할머니의 손은 더욱 굳어지고 온몸에 진땀이 흐른다. 바로 그 순간! 뒤에 줄 서 있던 그 험상궂은 얼굴의 젊은이가 할머니에게 말한다.
“할머니, 혹시 초조해하신 건 아닌가요? 걱정 마세요. 아무도 화내지 않습니다. 할머니 속도대로 천천히 하세요. 주변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당당하게 하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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