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 수준에서 물질 탐구 양자기술·생화학 응용 기대
[헤럴드경제=구본혁 기자] 지름이 1~2Å(옹스트롬, 1Å은 10분의 1nm)에 불과한 원자를 광학현미경으로는 볼 수 없다. 빛의 파장이 수백 nm가 훌쩍 넘기 때문이다. 작은 원자를 정밀하게 시각화하려면 관찰하는 도구도 그만큼 작아져야 한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안드레아스 하인리히 양자나노과학 연구단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연구팀은 독일 율리히연구소와 국제 공동연구를 통해 원자 세계를 위한 양자 센서를 개발했다.
양자 센서는 양자얽힘이나 중첩과 같은 양자역학적 현상을 정밀 측정에 이용하려는 기술이다. 큐비트(양자비트)가 초전도, 이온트랩, 양자점 등 다양한 설계 방식으로 구현되듯, 양자 센서도 다양한 종류가 개발됐다. 하지만 기존 기술은 원자 수준의 공간 해상도(센서가 감지할 수 있는 최소 거리)를 달성하지는 못했다.
연구진은 양자 물질을 위한 일종의 자기공명영상장치(MRI)를 고안했다. 연구진이 고안한 시각화 기술은 주사터널링현미경(STM)의 뾰족한 탐침 끝에 PTCDA라는 분자를 부착하고, 전자스핀공명(ESR) 측정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연구진은 PTCDA 분자가 탐침과 접촉하고 있는 상태에서도 재료의 전자스핀공명 측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후 연구진은 원자 단위 센싱 성능을 검증했다. 은(Ag)과 철(Fe)이 섞인 물질에서 각 원자의 전기장과 자기장을 측정할 수 있었다. 기존 기술은 단일 원자 크기 수준의 시료에서 전자기장 및 자기장을 측정하기 어려웠고 또한 원자 크기 수준의 분해능으로 시료의 위치를 특정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개발된 양자 센서는 독보적 성능을 나타냈다. 공간 분해능이 대폭 향상됐다. 0.1Å의 공간 분해능으로 자기장과 전기장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원자의 지름보다 10배 이상 작은 공간에서 나타나는 변화까지 감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양자센서 구동원리. 주사터널링현미경(STM)의 탐침 끝에 PTCDA 분자를 부착하고, ESR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전례 없는 수준의 감도와 공간 분해능을 달성했다. [IBS 제공]
연구진은 개발한 양자 센서가 양자 물질과 소자 설계, 새로운 촉매 개발, 생화학 분자의 양자 특성 탐구 등에 폭넓게 응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새로운 장비를 갖출 필요 없다는 것도 응용에 있어 큰 장점으로 다가온다. STM을 갖춘 실험실이라면 손쉽게 기존 장비를 활용해 양자 센서를 구현할 수 있다.
타너 에삿 독일 율리히연구소 연구원(前 IBS 양자나노과학 연구단 박사후연구원)은 “우리 연구진이 개발한 양자 센서는 MRI만큼 풍부한 이미지를 제공하는 동시에 단일 원자 수준의 공간 분해능을 갖춘 ‘게임 체인저’다”라며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서 물질을 탐구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배유정 스위스 연방 재료과학기술 연구소 그룹리더(前 IBS 양자나노과학 연구단 박사후연구원)는 “물질을 관찰하고 연구하기 위한 도구의 혁명은 축적된 기초과학에서 비롯된다”며 “‘바닥에는 여전히 많은 공간이 있다’는 리차드 파인만의 명언처럼 물질을 단일 원자 수준에서 조작하는 기술의 잠재력은 무한하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나노 기술 분야 국제학술지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 7월 25일 게재됐다.
nbgk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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