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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 향기 가득한 지구촌

"욕실 장면 많은 이유는…" 게이 디즈니랜드 만든 재미교포의 꿈

by 행복한게이 2024. 4. 22.

2022년 11월 5일 토요일

"욕실 장면 많은 이유는…" 게이 디즈니랜드 만든 재미교포의 꿈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15164

중앙일보입력 2022.11.05 14:54 업데이트 2022.11.05 20:01 나원정 기자

지난 3일 서울 메가박스 성수에서 개막한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SIPFF)에서 특별전을 갖는 재미교포 앤드류 안 감독. 사진은 지난 6월 뉴욕에서 최신작 '파이어 아일랜드' 프리미어 행사에 참석한 모습이다. 디즈니 산하 OTT 플랫폼 훌루, 디즈니+를 통해 출시된 '파이어 아일랜드'는 올해 SIPFF에서도 볼 수 있다. [AP=연합뉴스]

영국 작가 제인 오스틴(1775~1817)의 고전 소설 『오만과 편견』을 현대판 게이 로맨틱 코미디로 만든다면 어떨까. 그 무대가 미국 롱아일랜드 남단의 섬 ‘파이어 아일랜드’, 일명 '게이들의 디즈니월드' 같은 곳이라면.

올해 디즈니+가 출시한 미국 퀴어 영화 ‘파이어 아일랜드’는 여름을 맞아 게이 친구들과 파이어 아일랜드에 놀러간 한국계 간호사 노아(조엘 킴 부스터)가 『오만과 편견』의 무뚝뚝한 마크 다아시를 똑 닮은 변호사 윌(콘래드 리카모라)과 연애에 휘말리는 내용.

『오만과 편견』의 자매 주인공을 친자매처럼 끈끈한 게이 친구들로 바꾸고, 자매의 엄마는 게이 친구들의 대모 격인 레즈비언 캐릭터로 비틀었다. 한국계 희극인 겸 작가·싱어송라이터 마가렛 조가 이 역할을 맡았다. 무엇보다, 실제 성소수자 마을로 유명한 ‘파이어 아일랜드’를 동심의 천국 ‘디즈니월드’에 빗댄 대사를 미국 주류 가족영화의 상징인 디즈니 플랫폼에서 듣게 됐다는 게 흥미롭다.

영국 인디펜던트지는 이 영화에 대해 “퀴어 로맨스에 관객들이 여전히 목 마른 시점에 등장한 탈출구 같은 로맨틱 코미디”라 호평했다.

영화 '파이어 아일랜드'. 사진 디즈니+

연출을 맡은 재미교포 앤드류 안(37) 감독은 선댄스영화제 특별 심사위원상을 받은 장편 데뷔작 ‘스파나잇’(2016), 베를린영화제 초청작 ‘드라이브웨이’(2019) 등 한국계 이민자이자 성소수자의 정체성 고민을 담은 영화로 주목받은 인디 영화계 스타다.

허남웅 영화평론가는 그를 "모든 소수자의 가치를 흡수하는 스폰지"라 표현했다. 지난 3일 개막한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SIPFF)에마스터클래스 주인공으로 초청된 그를 이메일 인터뷰로 미리 만났다.

"디즈니의 지원, 긍정적 변화 신호"

그는 “디즈니가 ‘파이어 아일랜드’ 같은 작품을 지원한다는 건 긍정적인 변화의 신호”라고 말했다. “디즈니가 서치라이트 픽처스(‘파이어 아일랜드’ 제작사)에 큰 믿음을 갖고 있다는 점이 행운이었다. ‘파이어 아일랜드’가 젊은 성소수자 감독들이 목소리를 내는 데 영감을 주고, 디즈니 같은 대형 스튜디오의 지지를 받는 기회로 이어지길 바란다”면서다.

영화 '스파나잇'. 사진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파이어 아일랜드’는 풍자 코미디로 유명한 마가렛 조가 출연할 뿐 아니라 주연을 맡은 한국계 배우 겸 작가 조엘 킴 부스터가 제작·각본을 겸했다. 안 감독과 부스터는 2016년부터 알고 지낸 단짝 사이.

안 감독은 “미국 방송·영화업계에 한국계 미국인 성소수자가 많지 않아서 둘이 꼭 붙어다녔다”고 말했다. ‘파이어 아일랜드’는 실제 부스터가 보언 양(영화에서 공동 주연한 배우)과 그 섬에 휴가를 가서 『오만과 편견』을 읽다 얻은 깨달음에서 출발했다.

“조엘은 『오만과 편견』의 많은 부분이 자신이 섬에서 겪은 일들과 비슷하단 걸 알게 됐죠. 곧 본인의 이야기를 더해 시나리오를 쓰기로 결심했어요. 그가 이 섬을 무대로 '오만과 편견'의 게이 아시아계 미국인 버전을 작업 중이란 얘기에 무조건 제가 연출하겠다고 했어요.”

영화 '드라이브웨이'. 사진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작품마다 아시아계 미국 배우들을 발굴해온 그는 “미국엔 재능있는 아시아계 배우가 많은데 기회는 너무 적다. 새로운 배우들을 찾기 위해 아시아계 미국 영화를 많이 본다”고 말했다.

“‘드라이브웨이’를 같이한 홍 차우(태국 배우)는 가만히 있어도 빛이 나는 배우죠. ‘파이어 아일랜드’는 조엘 킴 부스터, 보언 양, 콘래드 리카모라, 마가렛 조와 함께 작업할 수 있어 행운이었어요. 학창 시절 마가렛 조의 시트콤 ‘올 아메리칸 걸’(1994~1995, ABC)을 보며 많은 영감을 받기도 했죠.”

'돌잡이' 장면 "자녀에 기대·압박 큰 이민자 가정에 의미깊죠"

그의 출세작 ‘스파나잇’은 심야 목욕탕 알바를 하는 L.A. 한인타운 게이 청년의 성장통을 음울한 색채로 담은 영화다.

생전 처음 립스틱을 발라본 6살 소년과 아버지의 갈등을 비춘 ‘앤디’(2010), 조카 돌잔치에 가게 된 한국계 미국인 청년을 그린 ‘첫돌’(2011) 등 초기 단편 두 편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파이어 아일랜드’는 같은 감독이 맞나 싶을 만큼 경쾌한 연출이 돋보인다. 올해 SIPFF에선 한국계 소년과 한국전 참전 백인 퇴역 군인의 우정을 그린 두 번째 장편 ‘드라이브웨이’까지 그가 연출한 장·단편 영화 5편을 모두 상영한다.

영화 '첫돌'. 사진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최근작이 초기작에 비해 인물 묘사가 밝고 따뜻해졌다고 하자 안 감독은 “ ‘드라이브웨이’ ‘파이어 아일랜드’가 ‘스파나잇’보다 훨씬 긍정적인 작품인 것에 동의한다. ‘스파나잇’을 만들 당시 한국계 미국인 성소수자로서 제 정체성을 이해하는 과정에 있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제가 제일 주목하는 부분은 아시아계 미국인 공동체에 속한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사랑하고 지지해야 하는지다. 백인 사회와의 관계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