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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 향기 가득한 지구촌

여성을 사랑한 여성들… GL의 세계에 빠져봐

by 행복한게이 2025. 4. 26.

김효실 기자2025. 4. 26. 07:05

4월26일 레즈비언 가시화의 날
볼만한 드라마, 영화, 웹툰 추천

게티이미지뱅크

“여성들 사이에서 표현되는 사랑은 특별하고 강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사랑해야 했고, 사랑은 우리의 생존과도 같았기 때문입니다.”

오드리 로드(1934~1992)의 어록 가운데 하나다. 그는 흑인, 여성,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엄마라는 다층적 정체성에 기반을 둔 ‘말하기’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앞장섰다. 4월26일은 그 같은 레즈비언 여성들이 이뤄온 성과를 기념하고, 여성이자 성소수자로서 차별받는 이들의 존재 그 자체를 받아들이기를 촉구하는 ‘레즈비언 가시화의 날’이다.

여론조사업체 입소스가 올해 23개국 1만8500여명에게 ‘친척, 친구 또는 직장 동료 가운데 레즈비언·게이 등 동성애자가 있는지’를 물어보니 평균 응답률은 48%에 달했는데 우리나라는 9%로 최하위권에 속했다. 동성애자임을 스스로에게나 주변에 ‘커밍아웃’하기 어렵게 만드는 사회적 차별과 편견이 공고하다는 뜻이다.

자주 보고 마주쳐야 편견을 깰 수 있다. 레즈비언 가시화의 날을 맞아 요다(활동명)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활동가, 신효진 한국퀴어영화제 집행위원장, 조경숙 만화 평론가로부터 볼 만한 콘텐츠를 추천받았다. ‘클리셰 범벅’이지만 도파민 터지는 로맨스부터 학원물, 먹방·힐링물, 역사 다큐멘터리까지… 여성을 사랑한 여성들을 다룬 다양한 작품들을 소개한다.

카카오페이지 갈무리

■ 웹툰 ‘부르다가 내가 죽을 여자뮤지션’

자신이 남자를 사랑하는 이성애자인 줄로만 알고 살아온 만화가 ‘들빨개빨’이 주인공이다. 그는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여자 가수 ‘★(별)’에게 반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뤘다. 앞서 ‘먹는 존재’ ‘족하’ 등 작품을 낸 만화가 들개이빨이 실제 여성을 좋아한 자기 경험을 담았다. 들개이빨은 한겨레21 인터뷰에서 “자신이 레즈비언인데 그 사실 때문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는 독자 한 분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이분이 내 만화를 보면서 ‘자살 안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고 했다. 18세 이상 이용가 웹툰이며 카카오웹툰, 카카오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영화 ‘럭키, 아파트’의 한 장면. 인디스토리 제공

■ 영화 ‘럭키, 아파트’

9년 동안 연애한 레즈비언 커플 선우(손수현)와 희서(박가영)는 ‘영끌’로 마련한 서울 시내 한 아파트에서 동거를 시작한다. 하지만 선우가 일자리를 잃으며 대출 이자 부담이 늘어난 커플 사이에 냉각기가 시작되고 아랫집에서는 악취까지 올라오는데….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는 매일매일’ ‘이태원’ 등을 만든 강유가람 감독의 첫 장편 극영화다. 요다 활동가는 “아파트 내 차별과 혐오 발언, 사회적 고립 속에 사망한 중년 레즈비언, 청년 세대의 주거·고용 불안, 가족 내에서 ‘이기적’이라 불리는 케이(K)-장녀의 현실까지 함께 담아냈다”고 했다.

드라마 ‘만들고 싶은 여자와 먹고 싶은 여자’의 한 장면. 엔에이치케이(NHK) 제공

■ 만화·드라마 ‘만들고 싶은 여자와 먹고 싶은 여자’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노모토와 먹는 걸 사랑하는 카스가가 이웃으로 만나 관계를 만들어 나간다. 둘의 관계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여성, 성소수자가 마주하는 배제와 차별 또한 세심하게 짚는 작품. 노(No) 자극 힐링 먹방 GL!”(신효진 집행위원장)

“여성의 식욕과 자기 몸에 대한 사회적 시선에 대한 고민, 일상의 돌봄으로 이루어진 퀴어 관계를 섬세하고 현실감 있게 풀어낸 작품. 레즈비언 서사를 비극적으로만 다루지 않고 여성 성소수자의 삶에 포커스를 맞춘다.”(요다 활동가)

일본의 만화가 유자키 사카오미의 작품을 일본 방송사 엔에이치케이(NHK)가 드라마로도 만들었다. 만화는 종이·전자책으로 서점 또는 웹툰 플랫폼에서 구매할 수 있고 드라마는 티빙·웨이브·왓챠에서 볼 수 있다.

드라마 ‘더 시크릿 오브 어스’ 유튜브 썸네일 이미지. CH3 갈무리

 

■ 드라마 ‘더 시크릿 오브 어스’

헤어진 연인이 다시 만나 사랑하는 현대 재회물을 좋아한다면 태국 방송사 ‘채널3’가 제작한 8부작 지엘(GL, 걸스 러브) 드라마 ‘더 시크릿 오브 어스’(ใจซ่อนรัก)에 도전해 보자. 병원장 딸이자 의사인 ‘파라다’(링링 콩)와 신예 스타 ‘언’(옴 콘나팟)은 과거 외국 유학 중에 만나 연애를 했다가 서로에 대한 오해로 이별했다. 그들 사이엔 또 다른 여성까지 등장하는데…. 신효진 집행위원장은 “정통 ‘도파민 범벅’ 로맨스!”라고 했다. 채널3 누리집과 유튜브 채널(영어 자막)에서 볼 수 있다. 참고로 오는 6월20~22일 열리는 제25회 한국퀴어영화제에서는 태국 지엘(GL)·비엘(BL) 콘텐츠에 관한 특별 세션도 마련된다.

영화 포스터. 인디그라운드 갈무리

■ 영화 ‘홈그라운드’

한국 게이 커뮤니티의 역사적 공간으로는 서울 종로나 이태원이 알려져 있는데 여성 퀴어 공간은 제대로 다뤄진 적이 없다. 권아람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홈그라운드’는 한국 레즈비언 커뮤니티의 역사를 1970년대 서울 명동의 ‘샤넬다방’, 2000년대 신촌공원, 2020년대 이태원의 ‘레스보스’ 등으로 조명한다. ‘레전더리 퀴어 아이콘’ 윤김명우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기억을 나눈다. 웨이브·티빙·왓챠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웹툰 갈무리

■ 웹툰 ‘각자의 디데이’

고등학생 이성애 커플 ‘진파란’과 ‘연노랑’이 주인공이지만, 주변 인물의 사랑도 섬세하게 보여준다. 레즈비언 서사가 주축인 지엘(GL) 콘텐츠에 바로 도전하기 부담스러운 입문자를 위한 ‘맛보기’ 추천작. 조익상 만화 평론가는 주간경향 기고에서 “염려도, 참견도, 혐오도 없다. 동성애를 ‘비정상’으로 전제하며 그 특수성을 사건화하던 방식보다 진일보한 묘사”라고 평했다. 오묘 작품으로, 네이버웹툰에서 볼 수 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